"시인/동주"
욱하는 성격의 청년이 항상 외우고 다니던 시가 있었다. '참회록'
지금은 욱하지 않는가? 많이 참고 있는걸까?
읽으면서 마음이 갔던 문구들.
p81
몽규가 그렇게 떠나 버린 것은 신촌문예 당선 소식보다도 더 충격이었다. 동주는 자신에게 물었다. 그러한 제안을 받았을 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민족의 처지에 분개하는 마음과 조선 독립에 대한 뜨거운 의지는 자신에게도 이었다. 하지만 가족과 벗들과 헤어져, 문학도 배움도 포기하고, 삶마저 내려놓아야 할 그 길을 갈 수 있을까.
: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 시절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해야 할까?
그러면 지금은?
P88 별 이야기..
북두칠성에서, 손잡이 반대쪽 끝에 있는 별 두 개를 잇고 거기서 다섯 배쯤 가 보자…. 북극성.
:누군가 알려준 별에 대한 얘기들. 그리고 별자리 책을 보며 그 별을 찾았던 시절
거리를 걷고 있노라니….. 늙어 빠진 거지 하나가 나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눈물 어린 충혈된 눈, 파리한 입술, 다 해어진 누더기 옷, 더러운 상처…. 오오, 가난은 어쩌면 이다지도 처참히 이 불행한 인간을 갉아먹는 것일까!
당황한 그는 거지의 손을 덥석 움켜잡고 이야기한다.“용서하시오, 형제. 아무것도 가진게 없구려.” 거지는 파리한 얼굴에 웃음을 띠고 말한다. “괜찮습니다, 형제여. 그것도 적선입니다.” 노작가 투르게네프는 깨닫는다. 자신도 그에게 적선을 받았음을..
p126 조선의 지식인 그리고 문학에 대한 정의와 고민.
진지하고도 열정적이며 오랜 사색의 역사가 담겨 있는 문학이, 어째서 내선일체로부터 출발해야 하며, 전쟁과 일본에 충성을 다하는 것으로 귀결되어야 한단 말인가. 문학 정신과 문학적 표현이 어떠하며, 문학에서 순수가 무엇이니 하는 그 열띤 논쟁들은 어디로 가 버렸나. 문단의 쟁쟁한 중진들이 한데 모여 내놓은,“조선 문학의 출발은 내선일체에 있다.”고 한 오늘의 선언에 대해서는 왜 침묵하는가?
P157
그새 학교 건물에는 새로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고도 국방 국가 체제 확립’ ~~ ‘내선일체’
:내선일체란 한국인과 일본인은 하나라는 주장이다. 한국인을 전쟁에 동원하려는 목적이 있었고 역사 왜곡을 추진했다.
P165
국민학교, 사람은 자유롭고 독립된 개인이기 이전에 국가의 통제와 지시를 따라야 하는 ‘국민’이라는 것을,어릴 때부터 주입하려고 바꿔 놓은 이름이었다.
P245
서양과 동양의 문학 작품들을 두루 찾아 읽고, 철학책도 사상서도 꼼꼼히 탐독했다.
시도 꾸준히 썼다. 동주의 사색과 감정, 마르지 않고 우러나오는 시상을 표현하는 데 우리말만 한 도구가 없었다. 마음속에 담아 놓은 생각과 입에서 맴돌기만 하는 표현이 하나의 시어를 만나 떠오를 때는, 가슴이 찌르르해지고 눈물이 핑 돌 만큼 좋았다.
p299
동주와 벗들의 젊음이 눈부시도록 싱그러웠다. 고개를 뒤로 젖히며 웃는 젊은이들의 머리칼을 봄바람이 부드럽게 쓸어 주었다.
누워 있는 동주에게도 그 바람이 닿은 듯했다. 모처럼 끈적이는 진땀 없이 개운하게 눈을 떴다.
~.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 보는 자유롭고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그러한 세상이 과연 가능할까? ~
그처럼 순수하고 평온한 감정이 사람에게 존재할 수 있는 걸까, 억울함도 분노도 비장함도 두려움도 섞이지 않은? 어떤 차별이나 제약 없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의 앞날을 스스로 만들어 가도 되는 걸까?